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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의료의 장점 '보편성과 접근성' 어떻게 살려갈까? |
| [새로운 시선]
오바마의 의료개혁과 한국의료의 특수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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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 10 / 05
이은경 |
원문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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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바마 의료개혁의 쟁점과 전망
지난 9월 9일 오바마의 의회연설로 추락하던 오바마의 지지율이 상승하면서 의료개혁에 대한 우울한 전망이 한풀 꺽인 듯하다. 전체 연설시간 56분을 의료개혁에만 할애했던 오바마의 명연설 덕에 지지율과 개혁가능성이 조금은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미국의 의료현실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이들은 미국 의료가 그 정도 상황인데도 의료개혁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을 갖는다. 하지만 미국의료를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한번 구축된 의료체계를 개혁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점을 깨닫게 된다.
오바마의 의료개혁안에 대해서는 미셀 오바마가 한국의료체계를 부러워했다는 점과 함께 여러 매체에서 다루고 있고 필요성에 대해서도 많은 보도가 있었기에 핵심적 내용만을 정리해보자.
첫째는 보험미가입자를 줄이고 최대한 보험가입혜택을 늘리는 것이다.
-어린이 대상 의료보장(SCHIP) 강화
- 무보험자들은 전국민건강보험거래소를 통해 새로운 공적 건강보험과 인가된 민간 건강보험 중에서 선택권을 제공
- 대규모 사업자의 경우 근로자에게 건강보험 제공을 의무화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일정금액을 국민건강보험재정으로 납부 의무화
- 개인의 경우도 건강보험료에 대해 세제혜택을 부여
둘째는 공보험을 창설하는 것이다.
전국민건강보험거래소(National Health Insurance Exchange, NHIS)를 설립하고 기존의 민간보험회사를 강제로 참여시키고, 기본적인 보장내용을 포함하는 상품의 판매와 기왕력 등에 따른 가입 거부조항의 금지, 집단 보험료율 선정, 새로운 공공보험에 준하는 보장성 등에 대한 강제 조항 신설을 통해 기존 민간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또한 공공보험회사(National Health Plan)를 NISH에 포함시켜 공공-민간 간의 공정한 경쟁을 통해 공공보험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셋째는 의료비를 절감하는 것이다.
- 최신의 전자의료정보 시스템을 도입하여 의료과실로 인한 사상자와 의료비용 감소
- 독과점 형태의 민영 건강보험 시장과 의약품 시장을 지목하고 경쟁체제 도입을 통해 가격경쟁을 유도
- 메디케어와 제약회사 간 약가를 직접 협상하고 값싼 의약품을 수입하여 공적건강보험에서 활용하여 약제비의 절감과 공공보험의 경쟁력을 동시에 높임
- 소규모 사업장의 사업자와 개인보험 가입자에 대한 의료비지원
- 의료기관의 질적 평가와 평가결과, 진료비용 공개
마지막으로는 예방의료와 공중보건 서비스 확대가 있다.
질병예방 서비스와 공중보건 서비스를 확대하여 만성질환의 예방 및 관리를 강화하여 만성질환 치료비 감소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국민건강 증대를 통해 의료비를 감소시킬 계획을 밝히고 있다.
이중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공보험의 창설이다. 물론 전국민 단일보험 같은 성격의 공보험이 아니라 민간보험과 경쟁할 수 있는 공보험을 창설하여 무보험자의 가입을 유도하고 공보험에 대한 정부지원을 통해 보장성을 높혀 기존 민간보험 가입자의 재가입을 노리는 방식이다. 물론 재정확보대책이나 기타 논란이 되는 부분도 있으나 공적 보험의 창설이 논란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2. 미국 의료개혁의 역사와 실패
미국의료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갖는 지점은 서구 대부분의 나라들이 근대국가 체계를 갖춰가는 과정에서 국가차원의 건강보장시스템을 구축한 반면, 미국만이 유일하게 그러지 못하고 1965년에 와서야 노인과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한 일부 공적보장시스템만을 도입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건강보장은 근대국가의 산물로 유럽국가를 중심으로 출발했고 체계화된 제도의 한 유형인 사회보험은 독일에서 시작되었다. 1883년 독일에 이어, 오스트리아(1887년), 노르웨이(1902년), 영국(1910년), 프랑스(1921년) 등에서 건강보험법이 제정되었고 1930년대 초반까지는 대부분의 유럽국가에서 사회보험 형태의 건강보장제도가 시행되었다.
미국 역시 역사적으로 보면 의료개혁을 몇 차례 시도한 경험이 있다.
오바마 미대통령이 이번 의회연설에서 의료개혁을 언급한 마지막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면서 미국의료개혁의 역사에 대해 언급했다. 루즈벨트가 처음으로 의료개혁을 이야기한 이후 100년이 지났고 그 후 거의 모든 대통령과 상원의원,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이 문제에 도전했지만 동의할 만한 법안은 1943년에야 처음 등장했으며 그 후 65년이 지나서도 같은 법안을 매회기 초마다 제시하고 있다고 통렬하게 지적한 것이다. 오바마 정부는 지난 시기 역사적 실패의 원인에 대해 많은 분석을 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의료개혁의 첫 번째 경험은 1900년부터 1917년 전후로 유럽의 나라들에서 사회보장 및 건강보험 제도를 도입하던 시기이다. 건강보장이 최초로 논의되었고 의사들의 조직도 약한 조건이었지만 상당히 강력한 수준으로 추진되었다. 하지만 1917년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해 건강보장-사회주의-나찌즘이라는 이념논쟁과 의사협회, 노동조합, 고용주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두 번째 경험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로 루즈벨트대통령의 주도로 의회에 상정된 사회보장에 대한 법률에 건강보장내용이 포함된 것이다. 농민, 노동자, 실업자, 여성 등이 지지하는 가운데 강력히 추진되었다. 하지만 미국노동총동맹과 산별노조 등 노동계의 지지도 얻었으나 의사협회의 강력한 거부운동, 다른 보험에 비해 추진세력 미흡 등의 이유로 사회보장법안에 다른 사회보험-노령연금, 고용보험 등이 포함되었지만 건강보장제도만은 제외되었다.
세 번째 경험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트루먼의 주도하에 추진되었던 의료개혁이다.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건강보장제도 개혁에 대한 요구가 높아져가고 트루먼이 복지법안을 의회에 상정하면서 싹튼 세 번째 기회는 전후 매카시즘의 광풍, 미의사협회의 극렬한 반대 등 이념논란과 이익집단의 거부로 물거품이 되었다.
마지막으로는 클린턴-힐러리의 의료개혁이 있다. 요즘들어 클린턴과 오바마를 비교하는 일이 잦다. 의료개혁은 클린턴이 가장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사업이고 의료개혁의 실패와 더불어 클린턴의 지지율 역시 급락했던 점을 들어 오바마의 의료개혁과 클린턴의 의료개혁을 비교하는 시도가 많다. 당시 힐러리 클린턴을 앞세운 백악관에서는 사활을 걸고 의료개혁을 추진했으나 보험회사, 제약회사를 필두로 한 강력한 의회로비와 이념논쟁, 너무 소모적인 논쟁 끝에 지쳐버린 지지자들로 인해 무산된 경험이 있다.
여기에서 클린턴의 의료개혁안을 보면 현 오바마의 안보다 상당히 진보적이며 구체적인 내용을 상당히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NHI라는 국민건강보험을 시행하는 것을 핵심 목표로 하고 재정확보방안이나 구체적 시행내용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방안으로 법률제안서만 1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양이었다고 한다.
<클린턴의 의료개혁안>
1. NHI(국민건강보험)을 실시한다.
2. 국민은 3종류의 보험 중에서 각자가 좋아하는 하나를 선택한다(주: 여기서 의료선택권의 제한이 있는 종류는 보험료가 싸다).
3. 보험급부대상은 의사진료비, 병원경비, 처방약품비용, 장기요양비 등 광범위하다.
4. 연방 및 각주의 의료비와 보험료는 국가의료심의회(Natioanl Health Board)를 설치하여 여기서 정한다.
5. 고용인의 보험료는 기업주가 80퍼센트, 고용인이 20퍼센트 부담하며, 기업주 보험부담총액이 총 지불액(전원 월급)의 7.9퍼센트 초과액은 국가에서 부담한다. 그리고 보험료 부담 능력이 없는 영세자영업자에 대해서는 국가가 돕는다.
6. 이를 위한 재원으로 담배세 등을 신설한다.
7. 의료과오 보험료와 소송경비의 대폭삭감을 시도한다.
하지만 클린턴의 이러한 개혁도 결국 무산되는 등의 과거 역사를 살펴보면 과연 오바마가 의료개혁에 성공할 것인가에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현재는 과거와는 다른 상황이다.
첫째로 의료비가 심각한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고 이로 인한 폐해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자동차 1대당 생산가격의 차이가 일본에 비해 1000달러 정도 비싸고 그 이유가 기업의 의료비 지출때문이란 이야기는 유명하다. 또한 개인파산의 절반정도가 의료비지출로 인한 것이고 의료비로 인한 파산자의 75퍼센트가 보험에 들어있었다는 보고처럼 국가경제, 기업경제, 가계경제 모두에게 의료비증가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그로 인해 의료개혁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어느 때 보다도 높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민간보험회사들의 의료비통제로 의사들의 지지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의료개혁 역사의 결정적 고비마다 의사들의 반대가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이는 상당히 긍정적인 측면이다. 의사들이 적극적인 반대만 하지 않아도 의료개혁의 가능성은 훨씬 높아질 것이다.
세 번째로는 오바마 행정부의 특징을 들 수 있다. 오바마는 클린턴 의료개혁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방대한 자료를 활용한 논리적 설득보다는 지역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동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개혁안에 대해서도 선명성보다는 일단 통과를 목표하고 있으며 클린턴 역시 어떤 수준의 법안이라도 통과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힘을 보태고 있다. 물론 한계가 있고 타협주의라는 비판이 있으나 이런 태도가 법안통과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의 법안통과가 가능하더라도 미국 의료시스템의 전면적 개혁과 향후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는 처음부터 무리하게 세팅된 의료시스템이 단일자보험이나 국가의 전면 개입이라는 특단의 조치없이 효과적으로 의료비를 절감하고 보편적인 의료혜택을 제공할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다. 또한 그러한 특단의 조치를 결코 미국이 택할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3. 미국 의료개혁 실패의 배경
1)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인 상태에서 모든 사람이 일괄적으로 포함되는 전국민 보험제도와 공공기관, 정부의 역할에 대한 심각한 거부감이 존재한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국가가 개인의 삶에 개입하는 것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있다. 근대국가 형성 초기에 강력한 중앙집권 체계의 구축과 사회주의 도전이라는 상황에서 국가차원의 건강보장제도를 도입했던 유럽과는 달리 국가 형성 초기부터 개인의 자조에 대한 신념과 국가의 역할에 대한 강력한 저항감이 이념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오바마의 의료개혁에도 가장 반대를 하고 있는 세력은 의료에 관련된 집단들이 아닌 정치세력들이다. 공화당-민주당내 보수파-강경 보수 세력들이 오바마의 의료개혁을 사회주의 의료라고 공격하면서 이념논쟁의 차원으로 끌어내리고 있는 것이 상당부분 먹히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이들은 선정적인 구호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메디케어를 받는 노인에게 들어가는 의료비를 절감하기 위한 죽음의 위원회(death pannel)을 창설한다, 전 공화당부통령 후보였던 페일린이 자신의 장애아들이 의료개혁 이후는 공무원의 손에 운명이 결정된다, 영국의 NHS는 치아가 부러지면 본드로 붙인다는 등 말도 되지 않는 주장들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언론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사실 미국의 의료개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료시스템을 둘러싼 합리적인 논의보다는 감정과 이념에 근거한 무분별한 논의가 주가 되는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합리적 토론이 아닌 언론을 통한 이념적 대립구도를 구축해 복지로 혜택을 보는 계층에게 실제 자신에게 무엇이 도움이 되는지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현상은 최근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교해 많은 시사점을 준다.
2) 의료공급자(보험회사, 제약회사, 의사협회, 병원협회 등)의 강력한 저항
영화 식코를 보면 흑백화면에 의료개혁은 사회주의 의료라고 주장하는 티비 광고를 볼 수 있다. 이는 트루먼의 의료개혁시기에 전미의사협회에서 150만 달러를 일시에 모아 전국에 티비광고를 시행한 것으로 이러한 사례에서 보듯이 미국 이익집단 중 의사협회와 보험회사 등의 로비 및 홍보 실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실제 여러 차례의 의료개혁 순간에 결정적으로 무산시킨 것은 전미의사협회를 비롯한 이익집단의 강력한 저항과 막대한 자금을 동원한 전국 광고 및 로비였다. 현재 오바마의 개혁플랜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익집단들은 한 발 빠져 관망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으나 구체적 내용이 발표되고 법안처리과정으로 들어가면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한 활동을 전개할 것으로 예측된다.
3) 의료개혁을 실현시킬 강력한 추진주체의 미형성
외국 의료개혁의 사례를 보면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대공황이라는 경제위기, 전후의 정치적 혼란, 사회주의나 진보세력의 강력한 도전, 카리스마있는 강력한 추진주체의 미형성 등이다. 미국의 경우 개혁은 의회에서 법안채택으로 이루어지는 특징이 있는데 의회와 행정부의 권한이 철저히 나누어져 있으며 강력한 카리스마의 지도자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특히 의료개혁에서는 카리스마있는 지도자가 없었으며 정치지형상 대통령이 찬성한다 하더라도 의회에서 거부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미국은 외국의 경우에서 보듯이 노조-진보정당-지도자의 추진주체 중 노조의 역할도 굉장히 미비했다. 근대 복지국가 형성 초기에는 노조에서 오히려 전국민 의료보험제도에 반대를 했고 현재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기업보험이 설립되어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오히려 자신의 보험이 축소될 것을 우려해 전국민 의료보험에 적극적 지지를 보내지 않고 있다.
전통적으로 복지강화에 큰 이해관계를 가진 노인들 역시 65세 이상 고령건강보험인 메디케어가 상당히 높은 수준의 고령자보험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보장성이 축소될 것을 우려해 오히려 적극적인 반대세력이 되고 있다. 복지수준이 매우 낮은 미국에서 가장 높은 복지를 누리고 있는 계층은 노인층으로 노인복지만큼은 오랜 역사속에서 매우 탄탄하게 구축되어 왔다. 레이건-부시로 이어지는 복지축소시절에도 노인복지는 계속 강화되어 왔고 이 노인층들이 보수적 성향으로 복지확충과 의료개혁의 강력한 반대세력이 되고 있다. 사실 미국의료제도의 문제로 가장 고통받는 층은 4500만이 넘는 보험미가입자와 낮은 보험보장성을 갖고 있는 그룹, 불법체류자 등 이주민들이다. 이들을 대변할 수 있는 집단이 없기 때문에 개혁에 강력한 지지세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
4) 개혁방안에 대한 다양한 입장차와 논쟁 후 미결정의 태도
현재 오바마의 당선에 적극적 역할을 했던 Move’on 등 오바마 지지자들의 의료개혁에 대한 입장은 상당히 애매하다. 전국민 단일 의료보험을 주장하는 세력, 공적보험만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입장에서부터 공적 보험은 지나치다는 의견까지 개혁안에 대한 다양한 입장차가 존재한다. 클린턴시기의 개혁때도 끝없는 논쟁과 싸움 속에 국민들은 개혁의 원래 의미보다는 이미지화된 이념논쟁에 휘말리고 추진세력들은 기한을 넘겨가면서 논쟁에만 매몰되었던 것이다.
4. 우리 의료, 과연 미국식 대로 될까?
1) 미국의 의료-최소한의 안전망이 튼튼하다.
사회변화를 설명하는 이론 중 경로의존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한 사회의 사회경제적, 문화적 경험이 한 사회의 특질을 결정하고 한번 구축된 사회제도는 쉽게 변하지 않으며, 외부의 충격이나 내부의 요구에 따른 변화 역시 기존의 구축된 경로를 따라 이루어진다는 개념이다. 미국은 국가형성초기부터 강력한 자유주의의 전통 속에서 국가복지의 영역을 최소한으로 규정해왔다. 연방정부가 국가차원의 복지프로그램 도입을 최초로 인정한 것도 193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대공황시기 대량실업과 빈곤상황에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사회질서를 수정하고 정부의 역할이 증대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힘을 얻게되자 가능해진 것이다. 이렇듯 한 사회가 변화를 선택하는 방향은 그 사회가 걸어온 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미국이 아무리 혁명적 변화를 해도 북유럽식의 복지체체로 변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미국국민들이 갖고 있는 사회복지에 대한 관점은 일반 국민에게는 불필요한 보충적 서비스이며 근대사회의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르는 사회적 변동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생활곤란에 대처하는 차원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는 보편적이고 포괄적 개념의 복지관과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이런 미국적 특징은 개인주의와 지방주의로 표현되며 복지영역에서 지역 커뮤니티를 통한 자조시스템과 노동조합을 통한 기업복지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1920년대 이후 지역공동모금제도로 대표되는 기금모금과 활동가를 중심으로 한 지역복지협의회를 중심으로 복지체계가 구축되었다. 대공황 이후에 연방정부차원의 공공복지영역이 확대되기는 했으나 여전히 보충적인 수준에 머물렀고 그 공백을 지역사회복지조직과 탄탄한 기업의 복지가 메우는 방식으로 복지체계가 구성된 것이다.
이는 의료시스템의 경우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미국의 의료제도의 특징 중 하나가 공공병원과 지역커뮤티티 병원의 질과 공공성 수준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다양한 재단의 펀드를 기초로 설립된 지역커뮤니티 병원들은 지역내 활동가-지역 조직들의 구심점인 경우가 많다. 의료가 영리화되고 의산복합체가 확대되는 과정에서도 지역 커뮤니티 병원의 영리병원전환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러한 공적 기능을 하는 병원의 존재가 심각한 수준의 건강보장체계를 갖고도 의료시스템이 그나마 작동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2)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장점과 단점이 공존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이러한 공적 성격의 병의원 설립의 역사적 배경이 없다. 우리나라의 의료인들은 의원설립-자본축적-병원설립-자본축적 및 부동산 매입-대형병원화로 이어지는 과정을 밟아왔다. 병의원의 설립은 철저히 민간영역에서 진행되었고 병의원은 의료인의 소유라는 개념이 확립되었고 지역의 병의원이 국가나 지역의 공공재라는 개념은 애초부터 성립되지 못했다. 국가 역시 의료공급의 주체로서의 정책보다는 민간병의원 개설에 지원함으로써 무의촌을 해소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다 보니 국민들 역시 병의원의 공공적 기능이란 것을 거의 경험해보지 못한 채 의료서비스는 당연히 돈을 내고 구매하는 소비재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이 현재 영리법인 병원도입에서 많은 국민들이 영리병원-민간의료인 소유 병원을 구별하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또한 미국의 경우에는 의료인들이 병의원 소유와는 상관없이 의료전문직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으나 우리나라 의료인의 경우에는 의료전문직의 모습보다는 병의원을 소유한 자영업자, 소경영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이는 전미의사협회로 강력하게 집중되는 미국의사사회와는 다르게 병원협의회, 개원의협의회, 네트워크병의원협의회 등 병의원의 소유형태로 나눠져 있는 한국의사사회를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강력한 전국민건강보험제도를 빠르게 도입하고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대표적 국가로 평가되고 있다. 빠른 경제발전과 낮은 민주주의 달성도, 낮은 국가 복지 수준이라는 상황에서도 전국민건강보험이 빨리 도입되고 정착되어 세계수준의 건강지표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주목받는 성과로 동아시아 국가들은 서구사회와 다른 독특한 사회복지체계를 구축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즉, 의료를 공급하는 병의원은 민간의 소유이나 의료는 보편적으로 제공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으로 경제발전, 교육수준의 증가와 더불어 국민건강향상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전국민건강보험의 성과는 저평가되어왔다. 물론 민간의료기관의 영리적 행태로 인한 비급여의 증가로 보장성이 50~60펴센트에 머무르고 있으나 의료이용의 문턱을 낮추고 의료를 보편적 서비스로 장착시키는데 큰 기여를 한 점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또한 이런 전국민의료보험은 사실상 의료공급의 무질서한 시장성과는 대비되는 제도이다. 바꿔말하면 심각한 수준의 무질서한 의료공급의 폐해를 강력한 전국민건강보험제도가 줄여온 것이다. 하지만 2000년대를 지나면서 의료공급시장에 대형병원으로 대표되는 자본이 들어오면서 이러한 안정적 구도가 깨지고 있다. 비급여와 의료기관의 경쟁으로 인해 의료비는 갈수록 상승하고 있고 의료비의 증가폭 또한 예사롭지 않다. 의료기관의 출혈경쟁은 의료기관끼리의 통폐합과 규모화에 대한 요구로 나타나고 있다.
3) 한국의 의료,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가?
현재 가장 중요한 논점은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어 갈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우리나라의 의료는 국가 지원의 절대적 부족이라는 한계 속에서 많은 발전을 이루어 왔다. 건강지표로는 서구 선진국에 비해 그리 떨어지지 않는 수준에 도달했고 의료인과 의료기술을 비롯한 의료인프라 역시 세계적 수준을 자랑한다. 하지만 전통적 근대국가를 빠른 시간에 통과하고 저성장, 저출산-고령화로 특징지어지는 후기산업사회로의 진입을 앞둔 상황에서 의료시스템 역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앞서 논의한 경로의존성의 개념을 생각해보면 한국사회의 의료시스템 역시 일정한 경로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의료민영화-산업화로 대비되는 흐름과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보편적 복지를 강화하는 흐름이 동시에 존재한다.
미국은 가장 강력하게 의료산업화-의료민영화정책을 집행해온 나라이고 그런 배경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미국적 상황에 맞는 의료시스템을 구축해왔다. 세계 1위의 경제규모와 지역을 중심으로 한 공공적 성격의 병원이 그나마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은 아주 짧은 시간동안 압축적으로 성장해왔고 무질서한 의료공급시장에 비해 전 국민이 의료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상호이질적 제도를 갖게 되었다. 이런 이질성을 극복하고 한국적 특수성에 맞는 보편적이고 지속가능한 의료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를 둘러싼 논쟁은 그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의료를 통해 얼마의 수익이 나고, 얼마의 일자리가 만들어지며, 해외환자가 얼마나 올 것인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몇 가지 기대편익을 위해 의료시스템 전반을 뜯어고치고자 한다. 하지만 사회보장 안전망이 부족하고 국가의 복지부담이 낮은 상황에서 의료공급시장의 무질서한 시장성이 좀 더 확대된다면 전국민건강보험제도 역시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의료개혁이 주는 시사점은 명확하다. 한번 구축된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개혁 역시 기존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 미국은 이미 영리화-시장화라는 체제를 구축하고 있으며 의료는 최소한의 공공성이 기반이 되지 않으면 많은 문제점이 나타난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오랜 기간에 걸쳐 나름대로의 안정망을 구축했음에도 개혁이 절박한 상황이다. 우리나라 의료는 미국식 자유주의-유럽식 보편주의-동아시아의 가족주의 등이 뒤섞인 독특한 시스템을 갖고 있고 전국민건강보험이라는 매우 강력한 의료적 형평성과 접근성을 경험해 왔다. 이런 경험이 있는 국민들이 영리화로 파생되는 의료의 양극화, 고가의 의료비, 선택된 사람들만의 의료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이 의료민영화-영리화가 대세로 보이는 시점에서도 의료의 공공성 확대와 의료개혁이라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되는 근거이다. 의료문제에 대해 우리 모두의 합리적이고 진지한 고민과 실천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은경 eundust@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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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7. [의료민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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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6. [혁신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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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5. [자본통제의 가능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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